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

“제 나이쯤 되면요 삶의 낙이 많이 없어요. 꽃보다 할배에 나오는 그리스 산토리니 근처에서 학회를 해도 그냥 귀찮다고 학회 끝나면 바로 비행기 타고 한국 와버려요. 여러분은 상상이 안 되죠?
그래도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에요. 돈, 물론 나도 돈 많이 벌어보지는 못했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이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교양 수업 중에 교수님이 스쳐 지나가듯이 한 얘기지만 내 머릿속에는 꽤 오랫동안 저 말이 맴돌았다. 얼마 전에 우연히 다시 읽었던 리차드 해밍(Richard Hamming)의 당신과 당신의 연구(You and Your Research) 발표의 스크립트에 적혀있던 해밍의 일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벨 연구소의) 식당 반대편에는 화학자들이 앉는 식탁이 있었습니다. … 그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물어보기 시작했지요.

“당신의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들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한 주 정도 지나서 또 물어봤지요.

“당신은 어떤 중요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렇게 물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도 않고 당신이 하는 일이 뭔가 중요한 것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면 왜 벨 연구소에서 그걸 하는데 시간을 쏟고 있죠?”

저는 그 후로 환영받지 못했고 같이 밥을 먹을 다른 사람을 찾아야 했지요. … 그 후 학계에서 그 테이블에 있었던 그 누구의 이름도 언급되는 걸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질문하지 못했던 거에요. “내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들은 무엇일까?”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문제를 푸는데 시간을 써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발표의 주된 내용이다. 읽을 때는 연구를 하면서 항상 생각해야 하는 좋은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인생에서 던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 프로그래밍을 하게 된 이유도 어렸을 때 이 분야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중요한 분야라는 조금은 근거 없는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공부하면서 잘 될 때도 있었고 좌절할 때도 있었고 프로그래밍이 재밌기도 하다가 지겨워지는 순간도 많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분야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변한 적이 없었다.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라고들 하지만 사실 흥미와 재미는 살다 보면 쉽게 변한다. 처음에는 그토록 재밌던 취미 생활도 한 달도 안 돼서 싫증이 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의 기준이 되는 가치관(Values)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취미 생활을 넘어서 위대한 일을 이뤄내는 자아실현의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재미있는가?” 보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 라고 묻는 편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끊임없이 나 스스로 묻고 확실히 답할 수 없을 때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중요한 일을 찾을 것이다.